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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자영업 <2> 왜 망하나

O Chae 2012. 7. 12. 20:12

 

경제위기 때마다 실직자들 창업 유도… 과당경쟁으로 공멸 재촉


 



■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

중기 일자리 창출은 않고 자영업 지원으로 실업난 모면 땜질 처방

'잘되는 집 옆에 차리자' 묻지마 창업도 문제

지난 5일 서울 명동의 은행연합회관. 16개 중소기업 금융기관과 중소기업 단체들이 모인 자리에서 송종호 중소기업청장은 1조6,920억원을 보증하는 '소상공인 신용보증 특별출연' 협약 체결을 발표했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지속으로 소상공인의 자금 애로가 가중될 것을 우려해서다.

이날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 발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초 김대중 정부가 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 때문에 밀려난 실직자들을 위해 신용보증기금에 5,000억원을 긴급 투입, 전국에 조개구이ㆍ호프ㆍ치킨집 창업 열풍을 불러 일으킨 것과 판박이다.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유럽 재정위기가 엄습하고 있는 현재도 정부는 쏟아지는 실직자와 은퇴인력을 흡수하고 완충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영업과 창업에 기대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영업자 지원대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만 아니라 자영업 과잉을 부추겨 공멸을 재촉하고 있다는 점이다.

◇땜질식 처방이 자영업 위기 키워=한국 자영업자 비중은 경제활동인구의 28.8%로 800만명에 육박한다. 독일ㆍ미국 등 선진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각각 11.6%, 7%에 불과하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과당경쟁의 힘든 하루를 살아 가고 있는 게 한국 자영업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처럼 한국 자영업이 과도하게 커진 상태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데는 무엇보다 정부의 안이한 '땜질식 처방'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손쉬운 자영업 창업에 의존해 실업난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대증요법을 반복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골목상권에 각종 진입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적 시각에서만 정책을 펴다 보니 자영업자들의 자립능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부실화된 자영업자에 산소호흡기를 다는 일종의 '연명치료'일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정부의 자영업 의존 정책은 필요 이상의 인력을 자영업으로 유입시켜 과당경쟁을 유발하고 상처를 더욱 곪게 만들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역대 정부는 위기 때 어쩔 수 없이 자영업 확대 정책을 썼다 하더라도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튼튼히 키워 일자리를 늘리고 유통 부문을 합리화해 자영업 부문을 축소시키려는 중장기 대책에 크게 소홀했거나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영업 과잉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인데 허리층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중소ㆍ중견기업의 일자리를 키워 자영업 의존도를 줄이는 게 답"이라고 진단했다.

◇'묻지 마 창업'도 과당경쟁 키워=서울시내 사당역ㆍ신림역 등 역세권과 주택가를 낀 주요 상권에는 A베이커리ㆍB베이커리 등 유명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매장이 보통 3~4개씩 밀집해 있다.

같은 브랜드 매장들이 밀집하면 과당경쟁이 벌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개별 매장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동네마다 한 집 건너 떡볶이집ㆍ고깃집ㆍ피자가게 등이 즐비한 게 골목상권의 모습이다. 실제 떡볶이집은 프랜차이즈만 무려 35개, 가맹점은 2,000개가 넘는다.

정부의 자영업 의존의 일자리 대책도 큰 문제지만 너도나도 '잘되는 집 옆에 차리자'는 베끼기식의 근시안적 창업 태도도 자영업 과잉을 불러온 또 다른 주범이다. 이에 편승, 절박한 심리를 악용하는 프랜차이즈도 공급과잉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한 편의점업체의 경우 무단횡단 금지막이 설치된 도로 바로 건너편에 편의점 한 개를 더 열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주간에는 직접 고객을 맞는다는 신설 편의점 사장은 "업체에서 부지를 선정해서 들어온 것일 뿐"이라며 고개를 돌렸다.

서울 아파트단지의 경우 매달 무료로 배포되는 음식점 할인쿠폰 책에 나오는 업체는 절반가량이 바뀐다. 손님을 끌기 위해 파격할인을 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6개월만 지나면 임대료 내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57.6%가 월평균 순이익이 100만원에 못 미친다.

동업 전문가로 여러 사업 아이템을 성공시킨 김병태 CWT 회장은 "남을 따라하는 창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식당을 하더라도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방식을 연구하고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2012.7.12 김희원기자 heewk@sed.co.kr,황정원기자 garde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