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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진로교육

O Chae 2012. 10. 24. 13:36

[청년드림… 진로교육이 미래다]<5> 아일랜드의 독특한 전환학년제 



高1 한 해, 아예 진로고민-직업체험 기간으로 제도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외곽의 록퍼드 매너 스쿨. 공립 여자 중등학교다. 레슬리 노턴 양과 노라 둘리 양은 9월에 이 학교의 5학년(한국 고교 2학년에 해당)이 됐다. 두 학생에게 4학년 한 해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노턴 양은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꿨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그리고 장애아동을 돌보는 시설에서 일주일씩 가르쳤다. 유치원에서는 꼬마들에게 아일랜드어 철자를 알려줬다. 초등학교에서는 간단한 영어와 산수를 가르쳤다. 장애아동 시설에서는 재활훈련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말을 타고, 마구간 청소를 거들었다. 취미가 승마여서 하루하루가 더없이 즐거웠다.

둘리 양은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다. 장래희망이 수시로 바뀌는 이유다.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뭘 잘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두드려 봤다. 더블린대에서는 대학생처럼, 국립극장에서는 공연을 지원하는 직원처럼, 자연사박물관에서는 큐레이터처럼 일주일씩을 지냈다.

○ 청소년기에 ‘나’를 찾는 1년

15세 여고생들이 교사, 대학생, 큐레이터 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아일랜드의 독특한 교육 시스템인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 덕분이다.


아일랜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6000달러로 세계 17위다. 글로벌 기업의 주요 거점국으로, 산업구조가 일찍이 고도화됐다. 그래서 교육열도, 대학 진학률(평균 60% 이상)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굉장히 높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아이들이 입시에 너무 매몰된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1974년, 아일랜드 교육부가 전환학년제를 도입했다. 원하는 학생에 한해 1년 동안 틀에 박힌 교과 공부에서 벗어나 진로를 고민하고, 봉사활동과 직업 체험을 하는 시간을 준다. 전환학년에 참여할지는 중등학교 3학년을 마친 뒤 결정하면 된다. 참여하는 학생은 4학년으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4학년을 건너뛰고 5학년으로 올라간다. 본격적으로 입시에 몰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로를 탐색하라는 취지다.

처음엔 전환학년제에 참여하려는 학생도 학교도 거의 없었다. 학부모는 5년 만에 중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데 굳이 1년을 더 보내는 걸 시간낭비라고 여겼다.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학교마다, 지역마다 실정에 맞춰 다양한 전환학년 교육과정을 개발하면서 지금은 3학년 과정(우리 중학교에 해당)을 마친 학생의 70% 정도가 전환학년을 거친다.

이 학교의 전환학년 담당인 케이트 오툴 교사(여)는 “기술이 발전하고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직업 체험도 컴퓨터 계통으로 바뀌는 추세다. 그래도 여학교에서는 아직 간호사나 교사 체험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간혹 운이 나쁘면 미용실에서 일주일 내내 머리카락만 치우다 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학교 밖의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장래희망이 자신의 적성과 잘 맞는지 확인하며 유익하게 보낸다는 설명.

○ 공부도 진로도 자기주도적

학생이 전환학년 기간 내내 직업 체험을 하는 건 아니다. 현장을 찾아가서 직접 일하는 직업 체험(Work Experience)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통상 일주일씩 세 번 정도 또는 열흘씩 두 차례 한다.

나머지 기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다만 시간표와 학습 방법이 좀 다르다. 교과 구성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한다. 대부분 기본 과목 이외에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반영해 영화, 예술, 무술, 사진 등 다양한 과목을 넣는다.

아일랜드 교육부는 전환학년에서 입시 위주의 암기 교육은 가능한 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영어 수학 과학 역사 같은 기본 교과를 배우지만 다른 학년과 다른 수업 방식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학생끼리 온전히 토론 방식으로만 진행하거나, 각자 에세이나 보고서를 완성하거나, 한 학기 내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집중 탐구하는 식이다. 대학에 가서도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셈이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자기주도학습과 같은 형태다.

샌드퍼드 파크 스쿨은 명문 남자 사립학교. 여기서 지난해 전환학년을 보낸 윌리엄 테리 군은 “중학교 과정까지는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지만 전환학년 동안 새로운 공부 스타일을 익혔다. 능동적인 공부를 통해 입시도 깊이 있게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의사가 꿈이었던 테리 군은 트리니티대 의대가 주관한 의사 체험을 했다. 의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일주일 동안 탈라트 병원에서 의사 한 명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응급실과 X선 촬영실을 지켜봤다.

그는 “의대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막연히 상상했던 의사의 생활을 보고 나니 장래희망이 더 확실해졌다. 의대를 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동참

전환학년제 운영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선 학교가 해마다 교과 과정을 새로 짜는 일이 복잡하다. 체험활동을 하는 회사나 대학을 아이들이 직접 섭외하기가 녹록지 않다. 기업으로서는 어린 학생이 찾아오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번거롭다.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환학년제를 키워왔다. 전환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는 따로 선발하지 않는다. 일반 교사 가운데 전환학년제에 적극적인 교사에게 전환학년 관리를 맡긴다.

추가 수당을 주거나 수업 시간을 줄여주지는 않는다. 업무를 맡은 교사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시스템이다. 전환학년 담당 교사는 전국 단위의 모임을 만들어 더 나은 교육과정을 고민한다.

샌드퍼드 파크 스쿨의 전환학년제 담당인 셰인 커 교사는 “수업을 하면서 전환학년까지 관리하려면 일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도 전환학년제를 통해 사회를 더 많이 배우고, 강의 방법도 연구하게 된다”고 밝혔다.

학부모 역시 학기 초마다 간담회에 참여해 자녀들이 어떤 과목을 배우면 좋을지, 또 직업 체험에 어떤 분야를 넣으면 좋을지 의견을 나눈다.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나 재직 중인 회사를 직업 체험의 장으로 제공하는 학부모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역사회의 동참이다. 학교 인근의 기업이나 가게, 봉사단체는 학생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아일랜드의 주요 대학은 전환학년 학생을 위해 기꺼이 학교를 개방한다. 전공별 교육과정을 알려주고, 실험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대학생이 멘토로 참여하기도 한다. 온 사회가 청소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탐색한다.

더블린(아일랜드)=[동아일보]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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