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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은퇴준비는 일

O Chae 2012. 10. 30. 07:26

[100세 시대… 은퇴준비 돈이 전부 아니다]<3> 해병대 장교 예편후 재취업한 최제언 씨

주특기도 살리고 건강도 얻고… “일하면 청춘, 활력은 덤”

[동아일보]

예편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오전 6시면 눈을 뜬다. 해병대 장교 출신의 최제언 씨(55)는 거울을 보며 양복의 ‘각’을 잡는 것으로 출근 준비를 마친다. 차를 몰고 그가 향하는 곳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정보통신회사. 최 씨는 3개월 전부터 이 회사의 에너지절약사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25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직장에서 만난 최 씨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하루 중 가장 설레는 때가 출근시간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출근길 새벽 공기를 맡으면 ‘아,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여전히 내가 청춘이라는 증거”라며 웃었다.

○ 청춘 유지하려면 일은 필수

그는 2002년 해병대 사령부 전산과장을 마지막으로 21년간의 긴 군생활을 마쳤다. 예편한 직후에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늦잠을 자고 오후엔 운동을 했다. 평소 좋아하던 산행과 골프 연습도 실컷 했다.

그렇게 딱 2년을 보내고 나니 노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최 씨는 “처음 1년은 쉬는 게 좋았지만 어느 순간 노는 것도 일이 돼 버렸다”며 “일을 하지 않으니 나이만 먹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예편한 뒤 매달 220만 원가량의 연금을 받는다. 작지만 집도 한 채 마련해 뒀다. 성인이 된 아들은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 넉넉지는 않아도 부부가 살기에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일이 간절했다. 이른 은퇴 뒤 시간만 죽이기에는 몸과 마음이 아직 팔팔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사회는 군대보다 냉정했다. 45세의 전역 군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다. 경비직과 관리직 정도가 전부였다. 공사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해병대 장교 출신이라는 자존심이 장애물이었다.

전공을 살려보기로 했다. 군생활을 하며 익힌 정보통신과 전기 관련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봤다. 채용공고를 보니 대부분의 직장에서 자격증을 요구했다. 그는 약 5개월간 경기 성남에 있는 정보통신교육원에서 공부해 정보통신기술자 고급 자격증을 땄다. 결국 그는 4년 전 한 정보통신회사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고 3개월 전엔 현재의 회사로 ‘스카우트’돼 왔다. 그의 현재 연봉은 4000만 원대 후반이다.


그는 이직한 회사에서 에너지절약사업 파트를 전담하고 있다. 제품개발뿐만 아니라 고객을 직접 만나 프레젠테이션 하는 일도 맡았다. 평일엔 오후 11시가 돼야 집에 들어갈 만큼 일에 열정적이다. 직원이 모두 쉬는 토요일에도 출근한다. 그는 “일을 통해 성취욕을 채우니 청춘의 활력이 돌아오는 건 덤”이라고 말했다.최 씨는 은퇴 뒤 노는 시간을 1년 이하로 잡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70, 80세 된 노인이라면 모르겠지만 50대 중반인 베이비부머는 은퇴한 뒤 재충전할 만큼만 쉬면 된다”며 “일을 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어 젊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취업센터 활용해 자격증 준비하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58.5%는 부족한 노후소득을 걱정하고 있다. 또 응답자의 67.2%는 은퇴한 뒤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는 은퇴한 뒤 마땅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현역 시절 전공을 살려 새 직장을 구한 최 씨가 가장 이상적인 재취업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박형수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백지 상태에서 새 직업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며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직종을 알아보는 게 재취업의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들어 은퇴자가 경력을 활용해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중견전문인력센터’(02-368-2354)가 대표적인 곳이다. 중견전문인력센터는 만 3년 이상 경력자의 재취업을 알선하는 기관이다. 연구기관 연구원, 공공기관 과장급, 상장기업 부장급, 금융기관 과장급이 주요 대상이다.

전공이 없다면 무료 취업교육과 취업 알선을 담당하는 ‘고령자인재은행’(02-2110-7319)을 활용하면 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46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만 5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자기소개법과 면접법 등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한다.

은퇴전문가들은 은퇴한 뒤에도 일을 하는 게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한주형 퓨처모자이크연구소장은 “일을 하면 몸을 움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경혜 한국노년학회장은 “일을 하며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노년기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며 “건강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유도 얻을 수 있어 건강한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