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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축적하면 인사형통

O Chae 2012. 11. 8. 13:14

3~5년차 이직 많았던 PWC 이직자와 근무자 보상 분석
‘장기근속이 유리’ 설득 자료로
제록스·구글은 고성과자 특성 분석, 채용·승진·교육 등에 반영
어설픈 분석은 엉뚱한 결과 낳기도

김성근 감독이 2000년대 후반 한국 야구를 제패했던 힘은 혹독한 훈련량과 함께 ‘데이터’였다. 2008년 에스케이(SK)가 제주 오라구장에서 히어로즈와 맞붙을 때,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2루 베이스 근처를 가리키더니 “예전부터 저기가 불규칙 바운드가 잘 나온다. 수비가 잘해야 할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 감독이 지목한 지점에 타구가 정확히 날아왔고, 2루수가 어렵게 잡아내 승리를 이끌었다.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데이터에 기반해 타순을 짰다. 그는 평소 꼼꼼히 기록하며 자신의 선수가 상대팀 투수에게 1년 전에 삼진을 어떻게 당했는지 구종까지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기업 경영자도 김 감독처럼 언제나 우승을 꿈꾼다. 효과적으로 인재를 배치해 이익을 많이 내고, 경쟁사를 압도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업의 인사 방식은 실력보다 의사 결정자와의 관계가 우선시되거나, 경영자의 직감에 따른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이런 결정은 사실 일종의 도박과 같다. 경영 환경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한번의 인사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들은 이런 위험을 피하고, 성과를 최대한 내기 위해 이른바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사 방식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많은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경영자가 최대 효과를 낼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원의 나이, 성, 교육수준, 전 직장, 근무시간, 연수 성적, 설문조사, 보상, 업무 성과, 인터넷 블로그 이용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그 밑에 깔려 있는 원인과 결과의 흐름을 찾아 업무 배치나 신규 채용, 리더십 교육 등에 이용할 수 있다.

‘데이터 인사’의 성공 사례도 많이 나오고 있다. 회계·컨설팅 서비스 분야의 다국적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3~5년차 경력 직원들의 이직률이 높아지는 문제에 부딪힌 적이 있었다. 한창 일을 주도할 경력의 직원들이 빠지니 기업 경쟁력의 하락이 염려됐다. 이에 피더블유시는 회사에 남은 이와 이직한 사람의 직장 및 보상 수준에 대해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더블유시에 오래 남은 장기근속자들이 전반적으로 직급도 높고 보상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피더블유시는 이를 토대로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장기근속하는 것이 승진 및 보상에 유리하다고 설득했고, 26%까지 치솟았던 이직률은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밖에 제록스는 높은 성과자의 특성을 분석한 뒤 채용에 반영해 효과를 봤고, 구글은 성과가 높은 팀 리더의 특징들을 도출해 리더의 승진과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 인사’ 경영은 아직 일부 기업에 한정돼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인사분야 연구기관인 버진앤어소시에이츠가 2011년 600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약 56%가 인사 관련 데이터를 수집·측정·분석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고 응답했다. 6%만이 분석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겨레>가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기업 인사담당자 102명 가운데 인사업무를 위해 직원과 조직 성과에 관한 데이터가 갖춰졌다고 응답한 이는 51%(52명)에 그쳤다. 구성원들의 직무 만족도나 조직 몰입도를 설문조사한 적이 있다는 기업도 38.2%(39곳)에 불과했다.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의 정민호 컨설턴트는 “국내 기업의 경우, 정보가 축적되지 못하고 인사담당자 개인의 역량에 달린 경우가 많아, 실제 현업에선 인사 관련 데이터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성과보다 인사 결정권자의 친인척이나 주변 인물이 주로 발탁되는 한국의 기업 현실도 영향이 크다.

그렇다면 기업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원지현 엘지(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기업이 먼저 전사적 차원에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할 관리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원 연구원은 “데이터 분석에 능숙한 통계 전문가나 산업·조직 심리학 전공자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부적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의 시류에 휩쓸려 어설프게 분석한다면 엉뚱한 결과를 얻는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