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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민요 ‘황성의 달’과 우리가요 ‘황성옛터’의 비교 유감

O Chae 2018. 10. 21. 19:56

-고양진 칼럼-

                            일본민요 황성의 달과 우리가요 황성옛터의 비교 유감


                                                                                                                                         법학과

(1)

  고등학교시절 우연히 레코드판과 해설집이 합본된 세계명곡전집에서 일본민요 황성의 달(荒城, こうじょうの つき, 고죠노스키)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 가사의 비감함과 곡의 장엄함에 반하여, 한글로 토 달아진 가사를 외워 자주 불러 보기도 하였다. 그 때는 일제로부터 해방 된지 20년도 채 안 된 때였고, 6.25.전쟁의 참화가 아직도 생생히 우리의 생활과 감정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나 또한 반일감정 또한 가장 강렬한 때였고 사춘기적 센티멘털리즘이 가장 감수성을 예민하게 발휘하고 있을 때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반일감정과 황성의 달 사랑이 상호간 모순적이긴 했지만,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든가, 일본 노래라고 해서 세계적인 명곡을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패배주의적 생각일 수 있다는 둥 나름대로 독립된 자부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시대상 역시 상호 모순된 두 가지 철학사조가 인간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랬다. 그 당시는 아직도 인간 운명이 무한한 힘(이성·절대자·마음 등)에 의해 확실히 보장되어 있고 불가항력의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던 19세기의 낙관주의가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시기였지만, 거듭된 전쟁의 참화는 오히려 인간의 생존본능을 자극하기도 하고, 실존주의가 득세하여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옳아 보이기도 할 때였다.

일본 노래 황성의 달에의 미혹은 어쩌면 실존적 허무 속에서 실존을 가능성과 관련지어 해석한 키엘르케고을의 경지 속에서 그 혼란을 딛고 일어서려는 나의 내면적 저항감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2)

이러한 시대상의 반영이었는지 당시에 나는 물론 우리민족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던 노래들 중에 우리의 가요 황성옛터가 있었다.

이 노래 또한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라는 가사 한 소절만 불러 봐도, 가슴속에 찌릿하게 전달되어 오던 비장한 탄식과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있노라”./..“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등 끝없는 저항 정신이 또한 나의 가슴을 사로잡았었다.

다만 황성의 달이나 황성옛터나 달과 성터라는 같은 소재를 가지고, 인간사 영고(榮枯) 성쇠(盛衰)는 세월(歲月)을 이길 수 없다는 허무의 감정을 노래한 것인데, 하나는 일본 노래이고 또 하나는 한국 노래인데, 하나는 세계적 명곡반열에 오르고 있는데, 다른 하나는 왜 다른 나라들에 전파되지 않는 것인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황성옛터에 대한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 2절 정도만 알고 있었으니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다가 황성옛터에 대한 한 안내의 글에서,

세월의 흐름 앞에서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한 필멸자로서의 자신을 깨닫고, 주체할 수 없는 쓸쓸함과 설움을 담은 노래이다. 황성옛터가 황성의 달의 오마주라고 해도 될 정도로 주요 소재와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라는 글(  1)을 보고, 새삼 황성의 달황성옛터를 살펴보게 되었고, 느낀바 있어, 여러 사람들이, 두 노래의 이해를 함에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볼까 하여 이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위 안내 글에서 쓰고 있는 오마주란 말이 무엇인가 하여 국어사전을 찾아보니영화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아니! 나는 황성옛터를 우리 민족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노래로 알고 있었는데, ‘황성의달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그 장면과 대사를 모방하였다고 할 정도의 내용이라니...!!??......

나는 즉시 인터넷 자료들을 검색해 보며, 확인 작업에 들어갔던바, 위 나무위키의 해설 부분이 반드시 잘 못된 것이라고 할 것은 아니겠지만, 몇 가지 유의할 점들이 발견되므로 여기에 내 생각을 소개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3) 황성(荒城)의 황()거칠 황()로서, 황성(荒城)은 국어사전을 보면 황폐한 성()을 말하는 것이다. ()은 성, 나라, 도읍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두 노래 다 달밤의 황폐한 성을 무대로 하여, 자연의 유구함에 대한 인간사의 덧없음을 한탄 하는 점에서는 같다. 두 노래 모두 황폐한 성터를 기반으로 국가의 흥망성쇄를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는 변함없는 신의 가호를 찬송하는 노래이며, 다른 하나는 끝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주 독립의 의지이다.

 

즉 황성의 달은 봄날 높은 누각의 화사한 잔치 春高楼/

돌고 도는 술잔 그림자 만들고 盃 影さして/

천년 묵은 소나무 가지 비추던 千代枝 分/

옛날의 그 ()빛 지금 어디에 光今いづこ ...1절, ( 2) 라고 함에 대 하여 (필자 생각 ---그 빛! 지금 어디에 라고 하여 오히려 현재에도 생생 히 떠있는 저 달의 힘에 의해 다시 빛날수 있다는 폐허에서의 희망을 반어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황성옛터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아 가엾다 이 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2)” 라고 하여, 세상이 허무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독립의 꿈과, 모든 것을 내 맡긴 필사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에야 우리는 아아 가엾다 이 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헤매어 있노라...’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고보니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라는 일부의 가사 소개는 원래의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 못 수정한 것일 것이다.

 

(4)

두 노래 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천은 의구해/ 봄 깃든 성곽에 초목만 우거졌네 라고 노래했던 당나라 대시인 두보의 명시춘망(春望)을 련상케 하는 노래라는 인터넷상의 어느 글( 3)의 내용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황성의 달은 그 가사 내용으로 보아 이 주체임에 대하여, 황성옛터는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 내몸이 주체이다. 그리고 노래 탄생의 시대적 배경은 상호간 전혀 다르므로, 가사의 정확한 내용은 이 시대적 배경과의 관계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소절에서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하여 이들 부분에 대하여 인터넷상의 글들을 통하여 나름대로 정리한 부분을 여기에 소개 해 본다.

 

, 황성의 달1853~1877년의 메이지 유신과 그 중간에 있었던 1866의 막부패배, 1867 대정봉환이라는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 형성의 뻗어 나오는 혁명의 정열과, 1894년 청일전쟁에서의 승리의 환호,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할 시기의 일본 제국주의 찬양자들의 찬란한 희망을 노래한 것으로서, 거기에는 허무 보다는 희망을, 자신들의 수호신인 태양의 다른 상징인 달빛의 영원성을 그 주제로 하여 읊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사는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 출신의 유명한 시인 도이 반스이(土井晩翠, 1871-1952)의 시()이며, 곡은 1894년 도쿄음악학교(현재는 도쿄예술대학)에 입학해  본과를 졸업하고 연구과에 진학해 작곡과 피아노로 재능을 키워가다가 24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적인 작곡가 타키 렌타로(瀧廉太郎, 1879-1903), 1900, 그러니까 21살때 지어서 19013중학창가(中學唱歌)에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서, 이 노래는 세계로 펴져나가 1910년에서 1930년까지 구라파의 벨기에서 찬송가로 불러지기도 하였다 한다. 아마도, 벨기 인들은 여기의 달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구세주를 연상하였을 것이며, 그 뜻이 구세주에 대한 찬송처럼 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추는 광휘(光輝)는 옛 그대론데/()을 빼들 인걸(人傑)은 지금 어디에..'의  '반어법적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제2의 도약을 갈망하는 것이다. 즉

가을의 ()진영이 서릿발 색일때 秋陣営/

울며 가는 기러기의 수를 세었네 きゆく数見せて/

꽂아놓은 칼들에 번쩍거리던 うる沿ひし /

옛날의 그 빛은 지금 어디에 光今いづこ ..... (2)

 

이에 대하여, 황성옛터1919년의 삼일운동으로 대한독립군이 창설되고 우리 민족의 일제에 대한 저항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던, 1928,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극을 공연하는 극단인 이른바, 순회극단이 개성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작곡된 노래로, 옛날에는 찬란했으나 현재엔 그 흔적조차 없어지고 폐허가 된 고려의 만월대를 보고 전수린이 작곡하고 왕평이 작사하여, 이애리수(1910~2009)가 부른 가요라는데, 이 노래가 나오고 한창 유행을 한 시기는 1930년경이니 어쩌면 이 시기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암울하면서도 새벽이 가장 가까이에 있을 때쯤이었던 것이다. 이 노래를 유명하게 부른 이가 남인수라, 황성옛터의 왜색에 대해 한동안 말이 많았다고도 하지만, 정작 조선총독부는 이 노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고 하니, 이 노래 가사의 본질이 황성의 달의 오마주가 아니라는 것은 일제 당국이 제일 먼저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황성의 달은 메이지 시대의 번창하는 일제의 국운을 반영하여, 달을 주인공으로 하여 달빛의 유구함을 찬양함에 키포인트가 있다. 유럽에서 찬송가로 쓰인 이유이다.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달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이 노래의 가사와 곡이 나온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완성되어 근대적 통일국가를 형성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일전쟁을 막 일으키기 직전이다. 작곡가 타키 렌타로는 불과 20세의 청년에 불과 한 시점이며, 허무주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로 향한 일본국과 일본국민들의 꿈이 가장 야무지게 뿜어 나올 때이며, 황성의 달을 통하여 그들은 영원한 대일본제국의 야망을 키워가고 있었다고 보여 지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황성옛터에서의 주인공은 노래를 부르는 자, 그 자신이다. 여기서 황성과 달과 달빛은 모두 노래를 부르는 자의 감성적 배경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배경으로서 항상 변화하는 모습의 배경일 뿐이며 주인공에 의하여 재건되어야 할 대상이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나라를 찾아야 하겠다는 비장한 뜻을 품고 오랫동안 꿈의 거리를 헤 메고 있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이는 독립에의 먼 길에 상처 받고 애 끓는 긴 탄식을 쏟아 내고 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거기에서 절망하고 물러서지 않는다. 가사는 이어지며 다시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아 한없는 이 설움을 가슴 속 깊이 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3)’

라고 하여 비참한 과거와 매섭게 단절하면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 :  1.  나무위키/ 황성옛터 최근 수정 시각: 2018-04-19 15:13:57참조

  2. 일어 가사 번역은 인터넷에 떠 있는 다른 번역들을 참고하여 필자 나름대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번역해 본 것입니다.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3. 동북아신문 [김호웅칼럼]아름다운 노래는 세월의 언덕을 넘어, | pys048@hanmail.net

 


 

출처 : 고대66동기회
글쓴이 : 구름 원글보기
메모 : 우리의 '황성옛터'와 일본 '황성의 달'은 저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