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글

지리산 종주

O Chae 2011. 4. 9. 17:35

* 프리첼" 3942회" 에 등재된 내용인데,  프리첼이 폐쇄되어 다시 옮겨싣습니다.

2007.7.12.(목)~14.(토)지리산

       참석 : 김환기, 김창선, 류용택, 차기옥, 최영순

       코스  : 용산역12일 22시 50분 - 구례구역 13일 03 :27 - 구례읍(설령탕)- 성삼재4:47 -전망대 - 노고단산장5:50 - 임걸령7:45 - 노루목 8:10 - 반야봉(1732m)8:55 - 삼도봉10:05 - 화개재10:25 - 토끼봉 12:30- 형제바위 - 연하천산장13:05 점심후 출발14:00 - 벽소령산장16:00~16:20 -구벽소령 -덕평봉 -선비샘18:10 -칠선봉18:40- 영신봉19:30 - 세석산장19:40 - 산장출발(14일 8:30) - 700m하산지점9:05- 한신1폭포9:15 - 한신폭포11:00 -오층 폭포11:15 - 가네소 폭포11:40 - 첫나드리폭포12:00 -한신2계곡 합수지점12:30 - 백무동산장 백무동입구13:30 도착후 하산주 - 인월행 버스14:00 - 인월도착14:30 - 인월출발14:40 - 남원도착15:15- 새집추어탕 -남원역출발 16:37 무궁화호 - 영등포역 20:40 도착


지리산등산

1.1991.10 9 .3942회 중산리 <--> 천황봉  42명

2.1992. 8.15 처남 - 종택, 용우, 둘째아들경수  백무동 <---> 천황봉

3.1991. 11.16 총무부 직원(강경호 박상민 서동우 이재춘 이재호 김남규 김영기

              뱀사골 -->화개재- >삼도봉 - >노루목 -> 임걸령- > 노고단산장->

              노고단 -> 화엄사

4.1992.11.8 이강호 김영환 김종원 김인규 류용택 진주->산신봉(청학동)->구례구역

5.2004 .9.15 부모님및 형제자매가족   남원 천은사 성삼재 심원 반선 산내 운봉 주천 남원

* 20 년전1988.8.5(금)자 동아일보(20566호) 스크랩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레저 코너에 “지리산 2차선 도로 개설 1일 관광코스로”라는 기사에는 “‘85년 5월에 착공 현재 공사를 마치고 개통식을 남겨두고 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장중한 명산 지리산의 서북쪽 산자락에 2개의 해발1200m지점을 통과하는 관광도로가 새로 뚫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면모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환경훼손을 우려하는 이의 의견이 담아 있었다.

 

지리산종주가 맘을 설레이게 하다 산행에 앞서 畏友 김창선이 주도면밀하게 기차와 산장예약을 끝내고 주초에 산행준비물까지 메일로 보내왔다

첫날 산행

용산역을 밤10시50분에 출발한 기차는 구례구역에 3시27분이었고 택시로 구례읍 설렁탕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다소 컴컴한 새벽길을 가로 지르며 서둘러

 성삼재 주차장에 내리니 4:47.산행이 시작되다. 조금 오르니 좌측은 종주능선 가는 길이고 우측은 노고단 정상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좌측으로 행하였다. 노고단 전망대까지1.5km는 배수로도 잘 만들어져 있고 화강암 돌을 깔아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자연미는 떨어지고 지루하다.전망대는 화엄사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가파른 길이 마지막에“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르다”고해서 코재라 부르는 곳이다.  중간에 김창선이 스틱2개를 집고 걷다가 넘어져 공원초소 앞에서 상처부위에 약을 바르다. 15분 지나니 노고산 산장이었고 이른 새벽부터 취사준비중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노고단 산장근처 배수로에 물이 남쪽으로 콸콸흘렀다. 전남측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섬진강쪽으로 전부 내려갈 수 있도록 통수관을 묻었다는 차기옥의 설명이다.

해발1527m의 노고단(老姑壇)에는 송신탑이 보이고 자매봉으로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종석대는 마치 遮日(전주지방에서는 채알)을 펼쳐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차일봉이라 부른다.

노고단은 지리산 8 경 중의 하나인 “노고운해(老姑雲海)”로 유명하다.

천왕일출(天王日出) 직전단풍(稷田丹楓) 반야낙조(般若落照) 벽소명월(碧霄明月)

세석철쭉(細石躑躅) 불일현폭(佛日縣瀑) 연하선경(煙霞仙境)

노고단고개에서 임걸령까지 3.2km거리는 철쭉 조리대 참나무숲 등이 작은 길로 이어져 큰 굴곡없이 비교적 탄탄대로의 능선길이다.

노고단산장에서 동쪽 주능선의 숲속 길을 8분쯤 가니 넓은 분지가 나오는 데 바로 “돼지고원”이다. 돼지고원이란 지명은 이곳에서 멧돼지들의 마늘모양의 원추리 뿌리를 파먹는 모습이 종종 목격돼 붙여진 것이다. 헬기장 3개를 지나니 돼지고원이 끝난다.

임걸령은 피아골 산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10여분쯤 걸어가니

임걸령샘에 닿는다. 임걸령은 조선 선조때 지리산을 무대로 활동했던 초적 두목 임걸년(林傑年)과 관련이 깊은 지명이다. 여기서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혼자서 겁 없이 종주한다기에 물어보니 세 번이나 종주를 했단다.

임걸령부터는 처음으로 가파른 비탈길을 만나게 된다. 비탈길을 20여 분간 힘겹게 올라서면 부드러운 능선 오솔길이 노루목 삼거리까지 1km가량 계속된다.

노루목이란 명칭은 이곳 바위머리 모양새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든 모습이라는 얘기와 노루가 자주 지나다니던 길목이라는 말 등이 전해 온다. 여기서 또 20대 중반 젊은 대학생 둘이 종주하던 중 잠시 쉬고 있단다. 노루목에서 왼쪽의 오르막  길은 반야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반야봉을 거치지 않고 삼도봉으로 곧장 가는 길이다. 일행은 반야봉을 오르기로하고

노루목에서 왼쪽으로 20여 분 지나니 5~6m 철계단을 오르게 되다. 50 분 만에 반야봉 정상에 이르다. 반야봉은 지리산 천왕봉(1915m) 중봉(1875m) 제석봉(1808m)에 이어 1732m로 제4봉이며 주봉, 중봉이 절묘하게 빚어낸 봉우리로서 천왕봉에서도 선명하게 조망돼 두 봉우리의 정다운 모습이 쌍둥이  처럼 다정스럽게 보인다. 또 영락없이 여성이 볼일 볼 때 허리춤을 내려  엉덩이를 드러낸 모양 같기도 하다. 속설에 의하면 천왕봉과 마주보고 있으면서 매일 조금씩 움직여 천왕봉과 반야봉이 함께 만나는 날 우리나라 큰 대업을 이루게 된단다. “춘향전” 경판본에서 월매가 지리산 반야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신께 며칠을 기도한 덕에 산신령이 그 정성에 탄복하여 아리따운 춘향이름 점지해 주었다는 대목을 보아도 지리산에 가장 모성적인 봉우리임을 알 수 있다. 지리산의 이중성이란 표현을 쓰는 데  이는 지리산이 모성적이 포근함과 부성적인 엄격함을 간직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반야봉 정상에는 오석으로 아담하게 만든 남원산악회의 표석이 있고 3~4m거리에 구례군에서 화강암으로 깍아 세운1.2m 높이의 표지석(1732m)이 있었다. 남원산악회의 표석에 정감이 더 가는 것은 은연중 내 뇌리에 잠재하고 있는 나의 출생지가 전주인 때문이리라. 지리적 위치는 반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이고 반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이다. 각기 경계와 위치가 다름에 따라 표석을 세운 듯하다.

반야봉은 당초 종주계획에는 빠져있었으나 안 가본사람도 있어 오르게 된 것이나 노루목에서 오르는 데 50분 내려가는 데 30분이니까 1시간 20분의 추가 산행이 되었다. 이게 세석산장까지 가는 데 4시간이 더 걸릴 줄이야.  노루목 300m전방에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여 반야봉에서 내려와 삼도봉 방향으로 빠지는 곳 안내판이 있는 데에 이르러 주능선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0.5km15분을 가니 삼도봉(1550m )이다. 경남 전남 전북 3도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며 암괴 생김새가 낫날 같다하여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이라고 불렀으나 근자에는 삼도봉이라 부른다.“1998년 10월 삼도를 낳은 봉우리에서 전북, 경남, 전남 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天地人 하나 됨을 기리다”라는 글과 뽀쪽한 삼각형모양의 동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삼각조형물 끝을 많은 사람들이 만져서인지 반질  반질하게 윤이 나있다.

삼도봉에서 남쪽 황장산(942.1m)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不無長嶝) 능선이 뻗어나간다. 삼도봉에서 바위벼랑 밑을 비껴 내려오면 잠시 후 경사가 급하고 거친 너덜지대를 지나게된다. 불무장등은 산행제한지역으로 오를 수 없으나 길을 잘 못들어 오게 되었다는 말로 국립공원직원에게 둘러대고 차기옥은 올랐다 한다. 이 구간 200여m 536개에 이르는 나무계단길을 내려오면 깨끗하게 단장된 헬기장과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 화개재(花開峙)이다. 옛날 이곳에서 하동사람과 남원사람이 물물교역하는 장이 섰다는 곳이다.

화개재(1260m)에서 토끼봉(1522m)에 이르는1.2km길은 완만하면서도 지속적인 오르막 길이다. 반야봉을 기점으로 24방위(方位)의 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이라 하여 卯峰으로 부르던 것이 우리말로 토끼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전한다. 정상 초원에 ‘지보초(비비추)’가 많이 자라고 있어 ‘지보등’이라고도 부른다.

토끼봉에서 50분 가면 명선봉(1586.3m)이다. 그런데 정상을 거치지 않고 왼편 산허리 길을 길게 돌아가다. 오르막 중간에 총각샘이 있다하나 길에서 떨어져 있고 아무 표시가 없어 그냥 지나치다. 화개재를 지나 일행들보다 앞서가다가 차기옥과 나는 한적한 길목에서 擧風을 하면 정기(精氣)가 충만해진다는 속설에 따라 거풍(쌓아 두었던 물건을 바람에 쐼)을 하다.

명선봉에서 1km 30분을 내려가면 지리산 8 경 중의 하나인 煙霞仙境으로 유명한 연하천산장이다.1년에 70일 정도 맑고 계속 연하(煙霞:안개와 놀)로 해를 가리고 있어 煙霞泉이라고 한다. 지리산에는 여덟 개의 산장이 있으나 이중 뱀사골산장과 연하천산장이 전북지역에 있는 데 금년 봄 국립공원측의 뱀사골산장 폐쇄방침에 항의 농성까지 한일이 있었다는 얘기다. 道勢의 한계  때문이라는 차기옥의 설명이다.

점심식사후 오후2시 연하천산장을 출발하다 연하천 인근에는 “주목자생군락지”로 출입금지구역이란 푯말과 철조망으로 출입이 어렵게 막아져 있었다.

연하천 산장에서 0.7km가니 음정(마천)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음정6.6km벽소령2.9km)에 닿는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20분 정도 힘들게 올라가니 三角高地(1482m 남원시 산내면 함양군 마천면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지점)에 오른다. 여기서 남쪽 빗점골로 내려갈 수 있으나 정식 등산로는 아니다. 빗점골은 지리산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李鉉相)이 최후를 마쳤다는 곳이다.  연하산장에서 2.1km올라간 지점, 10m높이의 立石 두 개가 등을 맞대고 서있는 형제봉(1433m )이다. 형제봉에서1.5km 1시간 거리는 돌밭 길 너덜지대가 가파르게 되어있어 오르내릴때에 조심해야했다. 삼각고지에서 벽소령구간은 오르내리막 길이 쉼없이 반복하여 이어져 지루하고 피곤함을 느끼게하였다. 이 능선 길은 한국전쟁시 빨치산과 토벌군의 격전지로 “피의 능선”이라고 부른다한다.

 연하천산장을 출발하여 지리산 8경중의 하나인 碧霄明月로 유명한 벽소령산장 까지  6km 2시간 오는 데 가랑비가 내리다.

김창선이 젊은 여대생과 함께  뒤쳐저 앞서간 차기옥이 벽소령산장에 배낭을 풀어놓고 되돌아와서 한참후 그들을 데리고 왔다. 산장이 예약되었다하더라도 오후7시까지 당도해야만 숙소 배정하는 데 벽소령산장에서 세석산장까지는 길이 험하고 비가 오므로 5.6km이지만 3시간내에 도착하기 어려워 김창선은 산장으로 문자메시지를 띄우고 김환기는 국립공원간부인 지인을 통하여 우리일행이 조금 늦더라도 숙박에 차질이 없도록 부탁하다. 240명수용인원에 60명이 예비예약자란다. 당초 산행일정을  앞당긴 것도 산장사정 때문이다.

벽소령산장에서 1.1km 20분 거리에 마천으로 내려가는 길 공터에 구벽소령이란 푯말이 있다.(세석산장5.2km) 이어서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덕평봉(1521m)으로 올라간다. 덕평봉 남쪽에 절개지 공터가 있고  그 야트막한 축대아래 가느다란 대나무통에서 맑은 샘이 흐른다. 이 샘이 선비샘인데 신분갈등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선비들도 물을 마시려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어서 천민 앞에서도 선비가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선비샘에서 40분 걸어 오르면 전망대인 망바위에 닿는다. 망바위에서 15분 정도 가니 칠선봉(七仙峰 1576m)에 당도한다. 칠선봉은 일곱 개의 암봉이 일곱선녀처럼 한자리에 모여 노는 것같아 붙여진 이름이나 바위 모두가 험상굳게 생기다. 세석산장2.1km 벽소령4.3km지점이다.

칠선봉에서 가파른 철사다리와 험한 계단 길을 지나서 1시간쯤 가니 영신봉(迎新峰   1651m)에 이른다. 영신봉 안부에서 완만한 내리막 을 10분 내려가니 세석산장에 이른다.

내가 김창선이 함께 도착한 시간은 19 : 40 (벽소령16:20 출발)이고 비가 계속 내리고 먼저 도착한 차기옥 최영순 김환기가 져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 문제나 생길 가봐 심히 걱정했단다.

바람이 불면서 비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20시경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태풍으로 인하여 산행을 전면통제한다는 국립공원측의 안내방송이다.  매점은 밤9시까지만 운영하니 필요한 상품은 미리 구입하란다. 그렇게 벼르던 지리산 종주는 기상 때문에 단염할 수 밖에 없다. 기상대 일기예보가 당초 토요일 오후부터 비가 온다했으나 금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24시간을 빗나간 샘이다. 거기에다 태풍까지 몰고 오다니....

숙소는 3층 174,175,176,177호 이었고 차기옥은 다른 방에 배정되었다. 깔고 덮는 모포를 빌리는 데 2000원씩 이었다. 신발및 소지품은 각자 알아서 잘 관리하란다.

안내실 앞은 널따란 거실이었고 2층은 군내무반 처럼 2층 나무침상으로 되어있고  그래도 3층은 단층 나무침상이었다.  내온풍기가 비치되어 있으나  1 인당 폭1m도 안되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물은 좀 떨어진 곳 우물을 이용해야 했다.  저녁후 피곤하고 비가 계속오는 바람에 발도 씻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새벽 2시반 이어서 아침 많은 사람 때문에 화장실이 붐빌 것을 대비하여 일찍 갔으나 밑에서 찬바람이 들어와 통변이 되질 못했다. 도심 수세식 비데까지 딸린 아파트화장실과는 딴판이어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이튼 날 산행

이튼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린 다음 하산키로 하고 출발에 앞서 차기옥이 하산 길을 대성골은 시간이 덜 걸리고 다소 편한 길이나 한신계곡은 2시간이상이 더 걸리고 힘든 길이나 계곡경치도 좋아 한신계곡 길로 하산하여 백무동으로 가기로 하다. 그러나 김창선의 발상태가 여의치 않아 다소 걱정이 되었으나 기우였다.

한신계곡의 유래는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이름지어진 것이라 한다.

세석산장에서 30분 내려오는 700m 지점까지 힘겹고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가파른 된비알(몹씨 험한 비탈) 돌계단이다. 올라올 경우에는 40~50분 걸릴상 싶다.

다시 15분가량 내려온 지점에 작은 폭포가 나온다. 첫폭포 이어서 사진 한 컷씩 찍고 하산을 계속하여 1시간45분 산머리에서 5.1km지점에 닿으니 한신폭포의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있는 곳에서 80m 정도 왼쪽 계곡쪽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로 하다.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차기옥과 함께 빨갛게 익은 복분자를 서너개 따먹다. 돌길을 내려오니 오층(오련)폭포 이정표다. 계곡 쪽으로 15m쯤 내려가니 위아래로 다섯 개의 크고 작폭포가 연이어져 있으며 폭포오른쪽으로 소나무 단풍나무가 우거진 기암절벽이 가로막고 있어 한층 산수의 멋을 더해준다.

다시 돌 포장길을 따라 10여분 내려가니 가네소 폭포가 우리를 반긴다. 15m쯤 높이의 아름다운 폭포  아래로는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사이에 50평 남짓한 짙푸른 소가 있는 데 수심이 무척 깊어 보인다.

가네소 폭포는 옛날 스님이 도를 닦고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줄다리를 걷고 내려오다 젊은 여인을 보고 정신이 헷갈려 그만 폭포에 빠저 공부를 그만두고 가버렸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안내문에 쓰여져 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듯이 비가 온다는 영험한 곳으로 전해진다

아치형 철다리를 건너 내려오면 한신 주계곡과 지계곡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오른쪽 지계곡은 장터목으로 오르는 길이다. 입구에 “ 반달곰서식지이며 무단 산행시 법에 의하여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한다. 통행금지” 표시와 함께 철저하게 철조망 등으로 가로 막아 놓았다. 일행은 길옆 바위에 앉아 잠시 쉬면서 귤과 빵으로 간식을 하다.

돌길을 내려오는 데 목련보다 작은 흰 꽃송이들이 길에 떨어져 있어 차기옥에게 물으니 함박꽃나무(산목련, 북한의 국화- 야생초의 편지, 황대권 도서출판 도솔 2002 꽃이 탐슬럽고 넉넉하게 큰데다 백의 민족에 걸맞는 흰색이고 수줍어하는 산골처녀처럼 다소 곳이 고개숙이고 피어있어 겸손의 미덕이 있다) 꽃이란다. 어제 산행 중에도  흰 송이가 좁은 산길에 흩날려 있는 것을 종종 본 일이 있다.

다시 돌과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출렁다리와 철 사다리를 걷네니 폭포가 나왔다. 이름 하여 첫나들이 폭포이다. 백무동에서 오를 때 첫 번째 만나는 폭포라 붙여진 이름이리라.

10 분을 내려가니 오른 쪽으로 조그마한 샘이 하나 있어 풀라스틱 표주박으로 물을 뜨면 샘 바닥에 닿을 것 같아 고인 샘물에 티끌이나 흙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반쯤 살짝 떠서 목을 축이다. 편안한 오솔길을 따라 쉬엄쉬엄 1.5km를 40여분 걸어가니 백무동 산장입구였다. 우측 길로 오르면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산장을 거치고 천왕봉에 이르는 길이다. 백무동은 무당이 많이 살아서 白巫洞, 무사가 많아서 白武洞, 흰 안개가 많이 끼어 白霧洞이란 이름으로 각기 불린다.

입구상점에서 솔잎 막걸리와 토속 도토리묵에 취나물 무침을 겯들여 하산주을 일배씩하다. 갈색 도토리묵은 약간 고소한 맛이 나는 제대로 된 것이었다. 취나물도 산취나물 그대로 맛이 좋아 최영순과 나는 각각 한 봇다리씩 샀다. 나중에 먹은 남원 추어탕 새집의 도토리 묵은 차이가 많았다.

주차장에서 인월행 버스를 타고 인월에서 남원으로 다시 버스로 가서 오후3 시30분경 새집추어탕을 찾아갔으나 남원천 대로변 신축3층 큰건물에 주차공간도 있고 외모는 잘 갖추어져지고 식당벽에 TV신문등 각종매스컴 소개된 것을 스크랩하여 걸어 놓았으나 음식맛은 허름한 시장통 한옥집이었을 때 예전 같지 않고 종업원의 손님대하는 모습은 영 아닌 것 같다.

주인은 출타중이라 민물새우젓인 토하젓 이름조차 잘 모르고 젓갈을 가져왔으나 토하젓 맛이 아니었다. 15년 전 1992.10.4 방문하여 그 집주인 할머니가 토하젓을 조금 접시 담아 준 것을 맛있게 먹은 적이 있었다.  식당은 현대식모습으로 바뀌어 져 있으나 음식점에 주인이 없으니 음식 맛이 좋을 리 있을까? 어제 구례읍에서의 아침과 오늘 새집추어탕을 김환기가 샀다. 친구의 우정으로 식사를 샀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다  또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산행안내를 위하여 시간에 할애한 차기옥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가을에 종주를 완전하게 다시 한번하기로 기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