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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인맥 쌓기 열풍

O Chae 2014. 1. 17. 18:57

유치원서 대학원까지 '귀족인맥 쌓기' 열풍

명문大 출신으론 부족… 인간관계 강의 학원도 인기

 

평소 좁은 인간관계가 콤플렉였던 회사원 이성규스였던(32) 씨는 사람도 사귀고 운동도 해볼 겸 최근 지역 사회인야구팀에 가입했다가 혀를 내둘렀다. 지역 마당발인 팀 임원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각종 기업체의 영업 및 홍보 담당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운동은 뒷전이고 평일에도 수시로 술과 식사 등을 대접해 인맥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 생활에서도 인맥쌓기 경쟁을 하는데 기가 질렸다"며 "컨설턴트 업체에서 인간관계 강의라도 들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 지역에서 4년 째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황모(32) 씨는 명절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객은 물론 친지·지인들 선물까지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황 씨는 "실적이 좋아지긴 했지만 명절만 되면 100만 원 상당의 선물비가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 해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 인맥 쌓기 광풍 부는 한국 사회 = 날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사회 속에서 인적네트워크(인맥) 관리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인맥쌓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각종 모임이나 동호회 등은 물론, 매월 수백만 원 짜리 유치원부터 한 학기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대학 최고위 과정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 사귀는 법'을 알려준다며 한 달 수강료가 수십만 원에 육박하는 인간관계 컨설턴트까지 유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인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지난 2010년 한 취업포털사이트의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86.5%가 인맥은 능력과 직결되므로 관리 대상이라고 여긴다고 답했고, 2011년 한 보고서는 이직자의 60% 이상이 인맥을 활용해 직장을 옮겼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등산과 체육 모임 등 지역 커뮤니티도 인맥쌓기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인맥관리를 위한 인간관계 강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강남 일대 스피치 학원에는 인간관계를 주제로 한 달에 30만 원 짜리 강좌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명문대 진학이 가장 좋은 인맥쌓기 방법으로 최근에는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명문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김모(34) 씨는 "지방 출신으로서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는데 로스쿨 시절 '8학군 출신'이나 '명문 사립초교 출신' 등 다른 동기생들이 구축한 인맥에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며 "추가로 인맥을 쌓기 위해 한 학기 1000만 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학 최고위 과정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또 김 씨는 세 살 된 아들에게 유치원 때부터 좋은 인맥을 만들어주기 위해 한 달 원비가 200만 원에 달하는 이른바 명품 유치원을 물색하고 있다.

◆ 스트레스 인맥관리 부작용 커져 = 인맥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관련 스트레스나 정신적 허기짐을 호소하는 현대인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이명호(31) 씨는 "한때 나름대로 인맥 관리를 해 보겠다고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만남을 계속하려 노력했지만 하면 할수록 공허한 느낌이었다"며 "관리를 '당한다'고 느낀 상대방도 벽을 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민아(사회학) 중앙대 교수는 최근 '사회적 연결망의 크기와 우울 수준의 관련성' 연구 보고서를 통해 접촉하는 사람의 수가 50명 이하일 때는 연결망의 크기가 클수록 우울 수준이 낮지만 50명 이상에서는 오히려 우울감이 커진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황재연 (정신건강의학과) 강동성심병원 전문의는 "인맥관리에 따른 피로감은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넓은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단골 스트레스였는데 최근에는 일반인 중에도 인맥 관련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문화일보 2014.1.17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