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글

南固山城 萬景臺 鄭夢周의 憂國詩

O Chae 2007. 9. 29. 08:23
 

 

萬景臺 鄭夢周의 憂國詩

 

포은(圃隱) 정몽주선생 시는 丹心歌(이 몸이 죽고 죽어~)가 회자되고 있으나 우리고장 남고산에도 그의 좋은 시가 있어 이를 소개합니다.

남고산은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등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데 그 중 중앙의 만경대 남쪽 벼랑 바위에는 여말禑王6년(1380년) 이성계와 함께 雲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성계가 고향인 全州 梧木臺에서 승전 자축연회를 베풀면서 야심을 유방(劉邦)의 대풍가(大風歌)를 읊으며 얘기하자 혼자 만경대에 올라 쇠퇴해 가는 왕조의 한(恨)을 읊었다는 鄭夢周의 시(詩)가 새겨져 있다.

이 우국시가 만경대에 각자(刻字)한 시기는 전라도 관찰사 권적(1675-1755)이 임술년인 1742년(영조18년)에 새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전라도 관찰사 李書九가 포은시를 차운(次韻)한 시(1820년, 순조20년)가 적혀 있다.

 

 

千仞岡頭石逕橫 登臨使我不勝情

靑山隱約扶餘國 黃葉繽紛百濟城

九月高風愁客子 百年豪氣誤書生

天涯日沒浮雲合 矯首無由望玉京

 

 

천길 산등성이머리 돌길 돌고 돌아 홀로 다다르니 나의 시름 이길수 없네

푸른산 뚜렷이 알지 못하니 부여국이요 누른 잎이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네

9월 소슬바람이 나그네 시름깊고 백년 호탕한 기상을 서생은 그르쳤네.

하늘가 해는 기울고 뜬구름 모이는데 하염없이 고개들어 개경만 바라보네

 

 

포은(圃隱)은 憂國詩를 남긴지 12년 만에 이방원(李芳遠-태종)이 보낸 조영규(趙英珪)에 의하여 선죽교에 선혈을 뿌리고 순명(殉名)했다.

 

산행답사때 漢詩에 조예가 깊은 김정석의 우람한 체구에 백발을 날리며 멋들어진 우국시 해설은 친구들을 감동케 했으며 안내판에 게재된 한시중 탁본을 옮겨 적으면서 잘 못 기재된 부분까지 지적하고 본고의 교열까지 해주었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하여 탁본을 전주문화원으로부터 이메일로 받았으나 아쉽게도 글씨를 판독하기 어려운 정도여서 탁본 영인본을 여기에 소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전주문화원 후암선생께서 탁본 원문과 대조하시어 친절히 校閱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南固鎭事蹟碑

 

만경대아래 남고사앞 남고산성 입구에 있으며 남고진의 내력과 축성에 관여했던 관찰사들의 공적사항을 기록하였다. 前面은 1846년(헌종 12년)에 崔英一이 찬(撰)하고 당대의 명필로 秋史 金正喜와 쌍벽을 이룬 蒼巖 李三晩(1770~1847)이 썼으며, 後面은 1849년(헌종15년)으로 명기되어 있다. 이 사적비의 글씨는 楷 行 草를 두루 섞어 쓴 창암의 대표적인 글씨로 평가된다.

 

 

본 글에 대한  상세한 주(註)를 게재하지 못하였습니다. 필요한 분은 제 메일 yy1658@hanmail.net로  문의하시면  글의 원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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